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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만 해도 잡스는 포춘이 선정하는 ‘올해의 파워 기업인 25명’ 명단에 끼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었고, 매킨토시로 그래픽을 앞세운 컴퓨터 운영체계를 보급했으며, 근래에는 아이팟으로 온라인 음악시장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선정 이유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컴퓨터 매니어들의 우상이었을 뿐 경영수완이 좋은 기업인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러나 포춘은 더 이상 그를 ‘이단’으로 분류할 수 없었다. ◆잇따른 매혹적 작품들=경영학계의 석학 짐 콜린스는 그에 대해 “반도체와 디스크·플라스틱·소프트웨어의 비밀스러운 조합으로 욕망의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 내고, 이를 매혹적인 브랜드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경이롭다”고 평가했다. 사실 애플의 매출은 인텔이나 델 같은 경쟁사에 비하면 20~30%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튀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승부를 거는 그의 경영스타일은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소비자가 이용하지 않는 기능은 과감히 제거해 가격을 낮추는 대신 화려한 디자인과 컬러를 사용하길 즐긴다.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인 ‘아이튠스(iTunes)’를 통해서는 소비자들이 음악을 손쉽게 검색하고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음악만 들을 수 있던 MP3플레이어를 ‘문화코드’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아이팟에 이은 또 다른 대박 상품은 휴대전화에 PC 기능을 결합시킨 ‘아이폰’이다. ◆끝없이 도전하는 삶=췌장암에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겼던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장에서 축사를 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픔을 간직하세요, 무지함을 잊지 마세요)”. 그는 이때 자신의 삶의 철학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바로 입양길에 올랐다. 입양하겠다고 약속한 변호사 부부는 말을 바꿨다. 여자 아이가 아니어서다. 잡스의 어머니는 다른 양부모를 찾았다. 하지만 그 부부의 학력이 고졸임을 알고 아들을 보내는 걸 주저했다. 결국 양부모는 반드시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뒤 아이를 맡을 수 있었다. 성장한 잡스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양부모가 평생 모은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 학기 만에 학업을 그만뒀다. 잡스는 전기 소켓에 머리핀을 넣어 화상을 입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전자장치에 관심이 많았다. 1976년 21세의 나이에 차고를 사무실로 개조, 애플사를 창립하고 다음해 세계 최초의 상업용 PC인 ‘애플’을 내놓았다. 회사 설립 4년 만에 20대의 나이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시련이 왔다. 그의 독선적인 경영에 불만을 품은 이사회가 85년 그를 쫓아낸 것이다. 그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커스로부터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를 사들이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95년 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가 3억5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렸다. 반면 잡스가 떠난 애플은 곤경에 처했다. 혁신적 아이디어보다는 경영과 관리에만 치중해 애플 특유의 경쟁력이 사라진 탓이었다. 결국 13년 만에 잡스는 애플 CEO로 다시 돌아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원들을 독려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손해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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