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광우병 소동이 일어난 건 2001년 9월의 일이다. 지바현의 한 도축장에 나온 5세짜리 소가 휘청 쓰러졌다. 영국 수의연구소에 정밀검사를 의뢰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왔다. 품종은 외래종이었지만 태생은 일본이었다. 이어 홋카이도에서도 감염 소가 발견됐다.

화들짝 놀란 일본이 선택한 것은 촛불집회 대신 엄정한 검역 대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에 대해 뇌의 일부를 떼어내 광우병 감염 여부를 판정하는 ‘전두(全頭)검사’가 탄생했다. 내각에는 의사·수의사·영양학자 등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식품안전위원회’를 설치했다.

2003년 12월 미국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자 일본 정부는 즉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수입 재개 압력은 시장이 더 큰 일본 쪽이 훨씬 거셌다. 미국 의회에는 “일본이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를 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제출됐다. 부시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독촉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2006년 20개월 미만 소에 대해 빗장을 풀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일본 정부의 대응방식이다. 일본은 수입 재개를 결정할 때까지 전문가들의 꼼꼼한 논의를 거쳤고 정부는 이를 존중했다. 식품안전위원회는 산하에 수의사·의사 12명으로 구성된 전문조사회를 만들어 숙고를 거듭한 끝에 “20개월 이하의 소는 전두검사를 안 해도 위험이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350만 마리를 전두검사했지만 20개월 미만 감염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데이터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입 재개 8개월 전의 일이다. 이 같은 논의는 언론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됐다. 물론 일본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 완화에 따라 미국과 재협상을 해야 하지만 전례로 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 정부의 자업자득이 더욱 명확해진다. 비(非)과학을 넘어 반(反)과학적 수준의 괴담이 난무하는 사태를 ‘남의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국민 건강에 관여한 협상을 앞두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의견수렴과 제대로 된 대(對)국민 설명 절차를 거쳤다면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 와서 미국 소 먹고 광우병 걸리는 건 골프에서 홀인원을 하는 순간 벼락에 맞을 확률과 같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버스 지난 뒤 손들기다.

전임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건 더 구차해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번 협상이 노무현 정권의 설거지였다는 발언을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요리사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설거지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식당에 손님이 꼬인다. 하물며 가뜩이나 음식 맛이 개운찮은 판인데 일러 무엇하랴.


중앙일보 예영준 정치부 차장

나는 이동규!

조회수 :
251
등록일 :
2008.05.13
13: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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